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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er News 2026.09.05 36

25년 근속 뒤 정리해고, 한 엔지니어가 남긴 회고가 실무자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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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에서 정리해고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한 베테랑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시스코에서 25년을 일한 끝에 정리해고를 당하고 1년이 지난 시점에 쓴 개인 회고 글은, 회사를 비난하는 고발문이 아니라 '그 일이 나에게 실제로 무엇을 했고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기록한 후반부에 해당한다. 감정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 한 조직에 몸담은 기술 인력이라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담겨 있어 한국 실무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예측 가능한 절차, 예측 불가능한 시점

글쓴이는 해고 통보 과정을 '지나칠 만큼 표준화되어 있었다'고 묘사한다. 대본, 타이밍, 전직 지원 업체까지 모든 요소가 통보받는 사람의 반응을 관리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도구적 공감(instrumental empathy)', 즉 일정과 예산이 잡힌 채 도구로 쓰이는 따뜻함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지점은 해고 자체보다 그 '시기'다. 정리해고가 매년 혹은 한 해 걸러 불규칙하게 찾아오면 직원은 특정 날짜에 대비할 수가 없고, 그래서 결코 긴장을 완전히 풀지 못한다. 25년을 그렇게 보낸 그조차 마지막 전화를 그저 회의 안건인 줄 알고 받았다고 한다.

이 대목은 상시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감각이다. 조직도 개편 소문, 안건 없는 회의 하나하나가 신호처럼 읽히는 상태는 그 자체로 사람을 소모시킨다. 예측 불가능성이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는 그의 관찰은,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는 환경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통찰이다.

일이 곧 정체성일 때

그는 자신이 완벽주의자이자 고성과자였던 것이 '성격이 아니라 우연히 좋은 평가를 받은 대처 전략'이었다고 고백한다. 밤과 주말을 25년간 회사에 내주었고, 그래서 통보는 직업적 자아를 지나쳐 수치심과 무가치함의 회로로 곧장 들어왔다. '일이 곧 나라면, 일을 없애는 것은 나를 없애는 것'이라는 문장은 자기 일에 과몰입해 온 엔지니어에게 뼈아프다. 누군가 방에 앉아 이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는 편이 수익성이 높을 뿐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나쁘다고 그는 적는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가 나름의 대비를 했다는 사실이다. 외부 고용주도 값을 치를 만한 일, 곧 개방형 표준과 오픈소스에만 집중하고 작업을 공개된 곳에 남겨 한 회사의 디스크에 갇히지 않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비의 비용을 시스코가 지불했다. 회사는 그의 IETF 활동을 여러 해 지원했고 VPP 프로젝트를 오픈소스화하는 비용을 댔다. 덕분에 그가 떠날 때 그 프로젝트는 한 고용주 안에 갇히지 않고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고, 일도 그 자신도 이어질 수 있었다. 커리어 자산을 특정 회사에 종속시키지 않는 전략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 그리고 그 한계

글의 후반부는 그가 분노와 상실을 다루기 위해 시도한 것들로 채워진다. 대화도, 길고 분노에 찬 고발문을 쓰는 것도 조금씩 도움이 됐지만 갈비뼈 아래 남은 무언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예전 같으면 비웃었을 네덜란드의 버섯(트러플) 리트릿을 예약해 다녀왔다. 자아가 물러났을 때 전화 통보에 대한 답이 '자신과 가족, 모든 생명을 향한 사랑과 친절'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왔다고 그는 회고한다. 다만 그는 이를 반복 가능한 과정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성공률을 '50 대 50'이라 표현하며 '제품이었다면 GA로 출시했을 것'이라고 자조한다.

이 글이 실무자에게 주는 것은 해법이 아니라 정직한 관찰이다. 25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라우팅 프로토콜과 인터넷을 만든 사람들과 같은 방에서 논쟁하고 이따금 이겼으며 일이 자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갔다고 그는 인정한다.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그 부조리를 웃어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가지가 남는다. 25년간의 반복된 감원은 함께 일한 사람들을 업계 전반의 수십 개 회사로 흩어놓았고, 그래서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한 곳에 집중되어 있던 1년 전보다 오히려 더 넓게 퍼진 강한 위치가 됐다. 조직이 매 라운드마다 그를 위해 그 네트워크를 지어준 셈이라는 그의 마지막 관찰은, 한 회사에 묶이지 않은 관계와 결과물이 왜 오래가는 자산인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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