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처리하는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의 성장 뒤에는 남다른 기술 설계가 있었다. 애니캐스트(Anycast) 네트워크, 동일 IP를 통한 접근 처리 같은 구조는 이 회사를 단순한 보안 서비스가 아니라 인터넷 인프라의 한 축으로 만들었다. 이런 기반을 그려낸 인물이 공동 창업자이자 초기 리드 엔지니어였던 리 홀러웨이(Lee Holloway)다. 그는 회사의 첫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소프트웨어 토대를 세웠지만, 심각한 뇌 질환으로 서른여섯이라는 이른 나이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가 남긴 기술적 성취와, 뒤늦게 드러난 병의 실체를 함께 살펴본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란 엔지니어
홀러웨이는 1981년경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실리콘밸리 한복판인 쿠퍼티노에서 자랐다. 애플에서 일한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자연스럽게 접했고, 동생과 하던 게임에서 보인 전략적 사고나 중학교 체스 대회 우승 일화처럼 승부와 논리에 대한 감각이 일찍부터 두드러졌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프로그래밍 재능을 드러냈고, 졸업 후에는 초기 인터넷 스타트업 HomeWarehouse.com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 회사가 2000년 월마트에 인수된 경험을 자산 삼아, 그는 UC 산타크루즈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대규모 시스템 구조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능력을 키웠다.
대학에서 아서 켈러 교수를 통해 만난 사람이 매튜 프린스였다. 당시 프린스는 스팸 차단 소프트웨어를 구상하고 있었고, 홀러웨이의 연구실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프린스는 그의 작업에 주목해 특허 공동 소유를 포함한 협력 관계를 맺고 곧바로 그를 영입했다. 2004년 유타주 파크시티에 세운 스팸 차단 회사 언스팸 테크놀로지스(Unspam Technologies)에서 홀러웨이는 급여 대신 숙식을 제공받으며 프린스 집 지하에서 소프트웨어를 만들었고, 수석 아키텍트로서 회사의 기술 기반을 이끌었다. 이 시기 부업으로 시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웹상의 스패머 데이터를 추적·수집하는 프로젝트 허니팟(Project Honey Pot)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온라인 사기와 악용을 추적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협을 '감시'에서 '차단'으로
2007년 프린스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홀러웨이도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MBA 과정 막바지에 프린스는 동기 미셸 잣린과 다듬은 사업 구상을 그에게 제안했다. 프로젝트 허니팟이 모은 스패머 정보를 활용해, 위협을 '감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차단'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한 시간에 걸친 설명을 잠자코 듣던 홀러웨이는 잠시 침묵한 뒤 "재미있겠다, 하자"며 합류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2009년 세 사람이 클라우드플레어를 공동 창업했다.
초기의 홀러웨이는 사내에서 '상주하는 천재'로 불렸다. 그는 하버드에서 다듬어진 사업 계획을 바탕으로 첫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애니캐스트 네트워크 구현과 셀(Cell) 아키텍처 설계 등 서비스의 핵심 인프라를 만들었다. 2010년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에서 회사를 알릴 때 그는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발표 당일까지 버그를 잡으며 데모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가 설계한 시스템의 확장성은 오늘날 클라우드플레어가 전체 인터넷 요청의 10% 이상을 처리하고 매일 수십억 건의 위협을 차단하는 토대가 됐다. 2014년 모든 웹사이트에 무료 SSL/TLS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에서는 마감 전날부터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밤새 코드를 완성해 예정대로 기능을 출시했고, 이 조치로 인터넷상 암호화 트래픽이 하룻밤 사이 두 배로 늘었다고 전해진다.
서서히 무너진 사람
순조로워 보이던 그의 삶은 2010년대 초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서른 무렵인 2011년경부터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고, 사교적이던 성격이 사라져 동료들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어린 아들에게조차 무관심해졌다. 첫 아내 알렉산드라는 감정이 멀어진 것으로 여겨 상담을 권했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2012년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별거를 택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이혼 서류를 요구했다. 주변에서는 성공과 경제적 여유가 그를 이기적으로 만들었다고 여겼지만, 이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는 훗날 밝혀질 병의 증상이었다.
이후 그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이던 크리스틴 타와 가까워져 2014년 로마 여행에서 서로에게 청혼하고 재혼했다. 태어날 때부터 대동맥판 폐쇄부전이라는 심장 질환이 있던 그는 두통의 원인일 수 있다는 진단에 따라 2015년 1월 여섯 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자체는 성공했지만 이후 그의 정신 상태는 크게 달라졌다. 예전의 열정과 카리스마는 사라졌고, 회의 중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고 동료 제안에 완고하게 반대하는 등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프린스와 잣린이 거듭 개선을 촉구했지만 효과가 없었고, 결국 2016년 그의 퇴사가 결정됐다. 전원 회의에서 프린스가 눈물 어린 작별 인사를 하는 동안 홀러웨이는 맥주병을 든 채 히죽거리며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퇴사 후 둘째 아이의 전업 아버지가 되려던 계획과 달리 이상 행동은 집에서 더 심해졌다. 아내가 진통을 겪는 병원에서 오래 잠을 자거나 무통 시술에 반대하며 의사와 다투었고, 갓 태어난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한밤중에 영화를 반복 재생하거나 비니를 눈까지 눌러쓴 채 온종일 집 안을 돌아다녔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2017년 3월, 신경과 전문의의 검사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뇌 위축이 확인됐고, UCSF 기억·노화 센터에서 '행동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bvFTD)'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이 남긴 것
전두측두엽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달리 기억보다 성격과 행동의 변화가 두드러지며 보통 50~60대에 발병하는 질환이다. 근본적 치료법이 없고 언어와 보행, 삼킴 기능을 차례로 잃다가 결국 생명을 위협받게 된다. 서른여섯의 조기 발병이라는 진단에 가족은 무너졌지만, 정작 홀러웨이 본인만은 의사의 결혼반지를 칭찬하는 등 남의 일처럼 담담했다고 한다. 그것은 이미 그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병이 만든 다른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진단 후 크리스틴은 일을 그만두고 곁을 지켰지만 진행은 가차 없었고, 2018년 무렵 그의 말은 "클라우드플레어에서 만났다" "로마에서 약혼했다" 같은 문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점차 뜻 없는 숫자와 문자의 나열로 바뀌어 갔다.
실무자의 눈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두 가지를 남긴다. 하나는 애니캐스트나 셀 아키텍처처럼 오늘날 당연하게 쓰이는 인프라 설계가 특정 개인의 집중과 통찰에 크게 기댄 결과였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몰입형 천재'에 대한 조직의 의존이 개인의 건강 이상 신호를 오래 방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성격과 태도의 급격한 변화가 곧바로 '성공에 취한 오만'으로 해석됐다는 대목은, 번아웃이나 태도 문제로 치부되기 쉬운 변화가 실은 의학적 원인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만 이 기사는 한 인물의 회고와 정황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서술인 만큼, 기술적 기여의 세부나 병의 인과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TTJ 코딩클래스 정규반
월급 외 수입,
코딩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17가지 수익 모델을 직접 실습하고, 1,300만원 상당의 자동화 도구와 소스코드를 받아가세요.
"비전공 직장인인데 반년 만에 수익 파이프라인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실제 수강생 후기- 비전공자도 6개월이면 첫 수익
- 20년 경력 개발자 직강
- 자동화 프로그램 + 소스코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