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신호가 끊긴 재난 현장에서 지도는 종종 무용지물이 된다.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인터넷 연결을 전제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지진 대응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사례가 인도주의 오픈스트리트맵(HOT)과 오픈소스 지도앱 CoMaps의 협업으로 공개됐다. CoMaps 공동 창립자인 안톤 베네모저는 지진 이틀째, 사람들이 '그라운드 제로'라 부르던 최대 피해 지역으로 내려갔다. 셀룰러 커버리지가 전혀 없는 구역이었지만 그는 즉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앱이 이미 그의 휴대폰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그는 엘살바도르에서 온 구조팀에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다. 소방관과 민방위, 여러 구조 부대로 구성된 이 팀은 본국의 지휘 본부에서 원격으로 지시를 받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문제는 팀원 대부분이 CoMaps를 몰랐고, 지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뿐이었다는 점이다. 안톤은 물류를 도우며 지휘 본부가 팀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키라고 요청할 때마다, 그 목적지가 지도에 표시돼 있기만 하다면 위치를 찾아내는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팀의 지도 담당자가 훨씬 제한된 다른 내비게이션 앱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앱에는 지역을 매핑하는 자원봉사자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세밀한 정보도, 신호 없는 구역에서 완전히 오프라인으로 작동하는 능력도 없었다.
위키피디아를 닮은 지도
CoMaps는 오픈스트리트맵(OSM)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안톤의 표현을 빌리면 '위키피디아 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들이 협업해 편집한 지도 데이터다. 비상업적이고 완전한 오픈소스이며, 100% 오프라인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특정 지역 지도를 한 번 내려받으면 인터넷이나 셀룰러 커버리지 없이도 휴대폰 GPS만으로 앱이 계속 동작한다. 이런 설계 특성 자체가 재난 상황에 이상적이다. 데이터를 직접 내려받아 분석할 기술 역량이 없는 조직도 쓸 수 있다는 점이 핵심 강점이다. HOT의 셀린 자캥 라틴아메리카 선임 매니저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다만 CoMaps에도 초기 1년 동안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지도를 갱신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는 점이다. OSM 원시 데이터를 실사용 가능한 지도로 가공하려면 강력한 서버가 필요했고, 모든 지도 업데이트가 앱 업데이트에 묶여 있어 앱스토어의 심사 절차를 거쳐야 했다. 재난 현장에서 '지난주에 매핑된 지도'와 '방금 매핑된 지도'의 차이는 결정적일 수 있는데, 이 구조로는 최신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필요해지기 몇 달 전에 바뀐 것들
주목할 대목은 이 한계가 정작 지진이 닥치기 전에 해소됐다는 점이다. CoMaps와 HOT는 지진 이전부터 이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4월에 안톤과 바스티안은 HOT의 지리공간 기술 워킹그룹에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로컬 기기에서 내려받은 지도를 공유하는 기능 같은 개선은 HOT이 요청해서가 아니라 CoMaps의 비전에 부합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둔 것이었다. 바스티안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도의 문지기로 의존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것이 현장에 지도를 배포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4월과 지진 사이에 팀은 지도 업데이트를 앱 업데이트에서 분리했고, 더 강력한 서버를 도입해 처리 시간을 10일에서 약 3일로 줄였다. 그 결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매주 새로운 지도 데이터가 배포되기 시작했다. HOT의 에밀리오 마리스칼이 베네수엘라의 최신 지도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문의했을 때, CoMaps는 이미 그것을 생성하고 있었다. 바스티안은 이를 두고 "타이밍이 정말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HOT의 태스킹 매니저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이 매핑한 수천 채의 건물이 몇 달간의 사전 작업 끝에 현장 대응자들의 화면에 도달한 결과였다.
바스티안은 이를 사진에 비유했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실제로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다. 카메라가 집에만 있으면 사진을 한 장도 못 찍기 때문이다." 지도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가장 좋은 지도앱은 이미 주머니에 들어 있고 사용법을 아는 앱이지, 배울 시간이 없는 바로 그 순간에 훈련을 요구하는 앱이 아니다. 실무 관점에서 이 통찰은 재난 대응 도구 선택의 기준을 바꾼다. 기능의 정교함보다 '사전 설치와 사전 학습이 끝나 있는가'가 결정적이라는 뜻이다.
현재 CoMaps 팀은 전원 자원봉사로 운영되며, 비상시에는 업데이트를 우선 처리해 약 35시간 뒤 현장에서 내려받을 새 지도를 준비할 수 있다. 팀의 목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 지구 단위 주간 업데이트 대신 지역별로 12시간마다 갱신하는 것이다. 다만 이 계획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비전이라는 점, 그리고 결국 지도의 품질이 자원봉사자들의 매핑 밀도에 달려 있다는 점은 명확한 한계로 남는다. 매핑되지 않은 지역은 어떤 오프라인 앱으로도 안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서로 만난 적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건물 하나하나를 쌓아 만든 지도가 신호 없는 현장에서 누군가의 길을 되찾아준다는 사실은, 상업적 목적이 아닌 도구가 어떻게 재난 대응 인프라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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