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명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쓰이는 화석 기록은 생각보다 훨씬 성긴 데이터셋이다. 껍데기, 뼈, 이빨처럼 단단한 부분은 광물화되어 잘 남지만 근육, 장기, 피부 같은 연부 조직은 거의 보존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가진 화석의 대부분은 광물화된 골격이다. 그런데 이 규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구간이 하나 있다. 약 5억7,900만 년에서 5억3,900만 년 전 에디아카라기 후기의 지층에서는, 단단한 부분이 전혀 없는 '물컹한 주머니' 같은 초기 동물들이 오히려 놀라울 만큼 정교하게, 때로는 생태계 전체가 통째로 보존된 채 발견된다. 수십 년간 고생물학자들은 이 역설을 설명하지 못했다.
케임브리지대학이 주도한 연구팀은 그 열쇠가 동물이 아니라 미생물의 진화에 있다고 본다. 핵심은 콜라게나아제(collagenase), 즉 동물 조직의 구조 단백질인 콜라겐을 분해하는 효소다. 생물이 죽은 뒤 이 효소가 콜라겐을 빠르게 분해해 버리면 조직은 화석이 될 만큼 오래 버티지 못한다. 주 저자인 필립 빅세복스(당시 케임브리지 지구과학과 박사과정)는 현대의 해파리가 해변에 밀려와 며칠 만에 완전히 분해되는 것을 예로 든다. 같은 물컹한 동물이라도 5억 년 전에는 흔히 화석으로 남았는데,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효소라는 '분해자'가 없을 때
연구팀이 강조하는 논점은 단순하다. 콜라겐 같은 생체 고분자는 그것을 분해할 효소가 존재하지 않으면 거의 분해되지 않고 남는다. 빅세복스는 이를 현대의 플라스틱에 비유한다. 분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그 물질은 그냥 '방치'된다는 것이다. 즉 에디아카라기의 좋은 보존 상태는 특별한 바다 화학 조건이나 조직 구성, 해저를 덮은 미생물 점액층 같은 기존 가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런 설명들은 일부 지역에서만 들어맞았을 뿐 모든 곳에 적용되지 못했다.
700개 유전체를 시간축 계통수에 겹쳐 보다
이 연구가 IT 실무자에게 흥미로운 지점은 결론보다 방법론이다. 연구팀은 700개 세균 유전체에서 콜라게나아제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 뒤, 이를 연대가 매겨진 생명의 계통수(time-dated tree of life)에 대조했다. 즉 '언제, 어떤 미생물 계통이 콜라겐 분해 능력을 획득했는가'를 비교유전체학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결과 콜라게나아제는 동물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며, 처음에는 산소를 견디지 못하는 혐기성 미생물에만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분포가 보존의 역설을 설명한다. 산소가 풍부했던 에디아카라기 바다에서 죽은 생물은 주변 퇴적물의 산소가 소진될 때까지 콜라겐을 그대로 간직했고, 그 시간 동안 화석화가 진행될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에디아카라기와 캄브리아기의 전환기 즈음, 콜라게나아제가 더 넓은 미생물 집단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의 부패를 일으키는 호기성(산소 이용) 세균으로 전이되면서, 콜라겐을 품은 조직을 분해하는 능력이 새로운 환경으로 확산됐다. 이 시점은 연부 조직 동물 화석의 수가 크게 줄어드는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분해 속도를 앞지르려면 훨씬 빠른 화석화 과정이 필요해졌고, 그래서 이후 화석 기록에서 연부 조직 보존의 양과 질이 급감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해석이다.
물론 더 젊은 지층에서도 연부 조직이 보존되는 예외는 있다. 죽은 직후 퇴적물 사태에 묻혀 부패를 피하는 경우처럼, 죽음의 방식과 이후 환경이 맞아떨어지면 가능하다. 다만 이런 사례는 드물다. 공동 저자인 알렉스 리우 교수는 이 결과가 지구 역사 전반에 걸쳐 연부 조직 화석 기록을 좌우한 하나의 포괄적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존재를 시사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먹이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미생물이 핵심 효소를 획득한 사건이, 연부 조직이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 자체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논리를 현재로 되돌려 플라스틱에 적용한다. 콜라겐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세균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분해할 이유가 없었지만, 콜라겐이 풍부해지자 새로운 먹이원이 되었고 콜라게나아제가 번성했다. 마찬가지로 환경에 쌓이는 플라스틱 고분자도 언젠가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가진 미생물에게 먹이가 될 수 있다. 데이터의 공백을 '기록이 없던 사건'이 아니라 '기록을 지운 과정'의 흔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이 관점은, 결손이 많은 데이터셋을 다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교훈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레버흄 트러스트, 영국 자연환경연구위원회(NERC), 생명공학·생물과학연구위원회(BBSRC)의 지원을 받아 학술지 《Current Biology》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