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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임북 소설, 코드로 읽기

모든 선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임북 소설, 코드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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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 M. 요아킴(Caroline M. Yoachim)의 단편 "Welcome to the Medical Clinic at the Interplanetary Relay Station"은 2016년 3월 라이트스피드 매거진 70호에 실린 약 2,100단어 분량의 SF 소설이다. 삽화는 레이코 무라카미가 맡았고, 이 작품은 이후 찰스 유가 객원 편집한 '베스트 아메리칸 사이언스 픽션 앤드 판타지 2017'(2017년 10월, 호튼 미플린 하코트)에도 수록됐다. 언뜻 보면 우주 정거장을 배경으로 한 가벼운 코미디지만, 작품의 형식 자체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사람에게 유독 낯익게 읽힌다.

소설이라기보다 상태 기계에 가깝다

이야기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으로 나뉜 섹션으로 구성된, 이른바 '게임북(choose-your-own-adventure)' 형식이다. 주인공은 수경 재배실에서 정체불명의 벌레에게 물린 뒤 토성과 천왕성 사이 궤도에 떠 있는 중계 기지의 의료 클리닉을 찾는다. 각 섹션 끝에는 '클리닉에 들어가려면 C로, 다른 곳에서 치료받으려면 B로'처럼 분기 선택지가 붙는다. 이 구조는 사실상 노드와 전이(transition)로 이뤄진 상태 기계이며, 각 선택지는 goto 문에 해당한다. 독자는 코드를 읽으며 실행 흐름을 손으로 따라가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상태 기계가 의도적으로 '망가져' 있다는 것이다. B와 C는 서로를 가리키며 무한 루프를 만들고, 작가는 아예 본문에서 '여기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진전되지 않는 루프에 빠진다는 걸 알아챌 만큼 똑똑하다면 E로 가라'고 적어 이를 드러낸다. Q 섹션은 '이 이야기 어디에서도 여기로 오라고 지시하지 않는다'는 도달 불가능한 데드 코드이고, U 섹션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개발자라면 unreachable code 경고나 끊긴 링크를 떠올릴 대목이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눈속임

이 작품이 형식 실험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겉보기 선택지 대부분이 실제로는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데 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든 이동식 추적기를 요청하든 결국 같은 D로 간다. 24장의 양식을 전부 채우든 맨 위 한 장만 채우든 도착지는 동일한 I다. 연고 병을 다 읽든 아무거나 바르든 T로 수렴하고, 이 모든 갈래는 마지막에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뜻하는 Z로 빨려 들어간다. 작가는 이를 두고 '중요해 보이는 결정이 실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고 대놓고 조롱한다.

이 지점은 UX와 제품 설계에서 말하는 '가짜 선택지'와 곧바로 겹친다. 사용자에게 여러 버튼을 보여 주며 통제감을 주는 척하지만 어떤 경로든 같은 결과로 몰아가는 다크 패턴, 취소를 눌러도 결국 해지되지 않는 흐름, 분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종착지만 있는 온보딩이 그렇다. 소설 속 '마지막 환자 사망 이후 경과 시간: 0'이라는 안내판, 여섯 시간이라는 대기 시간, 절대 발급되지 않는 이동식 추적기는 형식만 갖춘 채 기능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은유로 읽힌다.

큐, 상태 소실, 그리고 무너지는 프로세스

대기 순번 시스템도 실무자에게는 남 일 같지 않다. 주인공은 283번을 받지만, 뒤에 선 생명체가 번호표 클립보드를 통째로 먹어 치우면서 큐 전체가 초기화된다. 안내 방송은 '영수증 번호로 다시 줄을 서고, 영수증이 없으면 새 클립보드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단일 장애점(클립보드) 하나가 무너지자 전체 대기열 상태가 소실되고, 복구 절차라는 것이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하기인 상황. 상태를 한곳에 몰아 두고 백업도 없는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우화로 보여 준다.

다만 이 글을 실무 지침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설계 방법론이 아니라 관료적 의료 시스템을 겨냥한 풍자 소설이며, 등장하는 상태 기계는 '좋은 구조'가 아니라 '고장 난 구조'를 일부러 전시한 것이다. 무한 루프도, 도달 불가능한 섹션도 여기서는 버그가 아니라 메시지다. 그럼에도 코드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분기와 루프, 데드 코드, 가짜 선택지, 상태 소실이라는 익숙한 개념이 문학적 장치로 어떻게 전용되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결국 이 짧은 소설은 '흐름을 설계한다'는 행위가 개발자만의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사용자를 어떤 경로로 이끌지, 어떤 선택을 진짜로 존중할지, 실패 상태를 어디로 수렴시킬지는 코드든 서사든 동일한 질문이다. 모든 길이 Z로 끝나는 이 클리닉을 웃으며 빠져나온 뒤, 자신이 만든 화면에도 '들어오면 결국 죽음'인 경로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만하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lightspeedmagazine.com/fiction/welcome-to-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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