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산업은 오랫동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에 갇혀 있었다. 로봇이 팔리려면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쓸모를 만들려면 바로 그 로봇에서 나온 데이터가 필요하고, 그 데이터는 충분히 많은 사람이 그 로봇을 써야 비로소 쌓인다. 스타트업 드림랩스(Dream Labs)가 스텔스에서 나오며 공개한 모델 'Dream-1'은 이 순환 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다. 회사는 동시에 9,000만 달러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전 세계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개 API 형태로 모델을 내놨다.
Dream-1은 드림랩스가 '월드 액션 모델(World Action Model, WAM)'이라 부르는 범주의 모델이다. 두 팔과 평행 그리퍼(parallel gripper)를 가진 로봇을 API에 연결하면, 그 로봇에서 나온 시연 데이터나 별도 미세조정 없이, 또 머신러닝 전문 지식 없이도 곧바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컵 쌓기, 사과를 상자에 넣기, 식기를 싱크대로 옮기기, 파란 형광펜 뚜껑 빼기 같은 조작 작업들이 예시로 제시됐다.
왜 지금인가: 싼 하드웨어와 제로샷 일반화
드림랩스는 자율주행이 이 콜드 스타트 문제를 우회한 사례를 든다. 자동차는 자율주행 기능이 전혀 없던 시절에도 유용했기에 수백만 명이 매일 운전했고, 그 과정에서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쌓였다. 대부분의 로봇에는 그런 이점이 없었다. 그런데 두 가지 흐름이 상황을 바꾸고 있다는 게 회사의 진단이다. 첫째는 하드웨어 가격 하락이다. 쓸 만한 양팔 로봇 세트가 2,000달러까지 내려왔고, 반인간형 로봇 7대를 1만 5,000달러 미만에 구성한 사례, 그리고 허깅페이스가 8월 말 출시한 399달러짜리 'Microduck'이 나흘 만에 1만 대 이상 팔린 사례가 근거로 제시된다.
둘째는 로봇이 더 이상 자기 전용 대규모 데이터셋 없이도 쓸모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드림랩스는 2026년 2월 WAM 개념을 처음 소개한 'DreamZero' 논문에서, 특정 로봇(YAM)의 데이터 30분만으로 사후학습했을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업에 제로샷으로 일반화되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과거 수백에서 수천 시간의 로봇별 데이터가 필요하던 수준의 일반화가 30분으로 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두 흐름이 맞물리면 싼 하드웨어가 로봇을 늘리고, 일반화 가능한 모델이 그 로봇을 일찍 유용하게 만들며, 유용한 로봇이 다시 데이터를 만들어 다음 모델을 개선하는 선순환이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 드림랩스의 그림이다.
영상과 행동을 함께 예측하는 구조
로봇을 제어하는 방식은 보통 둘로 나뉜다. 관절 각도(joint angle)를 출력하는 방식은 특정 로봇 몸체에 묶인다. Dream-1은 이 방식도 쓰지만, 엔드이펙터(EEF) 자세, 즉 각 그리퍼가 어디에 있어야 하고 열려야 할지 닫혀야 할지를 예측할 수도 있다. 두 팔과 평행 그리퍼를 가진 로봇이라면 이 EEF 행동 공간을 공유하므로, 각 로봇의 역기구학(IK) 솔버가 이를 관절 명령으로 변환한다. 다만 공유 인터페이스만으로 제로샷 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Dream-1은 머리 카메라 하나와 양팔 손목 카메라 둘, 총 세 대의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 선행 연구인 UMI(Universal Manipulation Interface)는 모든 팔이 같은 그리퍼를 쓰고 손목 카메라만 활용할 때 제로샷 전이가 된다는 것을 보였지만, 그리퍼 하드웨어가 정확히 일치해야 하고 전체 장면을 보는 머리 카메라를 포기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WAM은 영상과 행동을 함께 예측하도록 학습되기에, 어떤 그리퍼든 어떤 몸체든 결국 '픽셀로 움직이는 형상'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로봇이 작업을 완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예측할 수 있다면 그에 이르는 행동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덕분에 18년 전 출시된 연구용 로봇 PR2처럼 전혀 다른 몸체도 제어했다고 회사는 전한다.
비용 구조와 한계
가격은 Dream-1이 시간당 3달러, 경량 버전 Dream-1-flash가 2달러다. 한 번의 호출이 1.6초 분량의 행동을 반환하므로 한 시간은 약 2,250회 호출, 행동당 약 0.0013달러(flash는 0.0009달러) 수준이다. 공개기업형 비영리 평가기관 로보커브(Robocurve)의 독립 평가에서는 Dream-1이 Opus 5.5나 Gemini 4 Argon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고, Gemini 4 Argon 대비 작업 시도당 비용이 16분의 1, 가장 빠른 LLM인 GPT-6 Astra보다 1.7배 빠른 것으로 보고됐다. 계획 수립은 LLM이 잘하지만 실제 동작에는 빠르고 범용적인 '시스템 1'이 필요하며, Dream-1이 바로 그 역할을 겨냥한다는 설명이다.
제로샷이 부족한 작업에는 미세조정 서비스(FaaS)가 제공된다. 사용자가 자기 로봇에서 데이터를 조금 수집해 넣으면 해당 작업용 맞춤 모델을 받는 식이다. 5분 분량으로 개선된 사례도 있지만, 기존 학습 분포에서 멀리 떨어진 몸체일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든다. 그리퍼 대신 다관절 손을 쓰는 덱스메이트(Dexmate)+샤르파(Sharpa) 조합은 77분, 엔드이펙터를 바꾼 YAM은 98분이 필요했다. 베타 파트너 로봇 12종 중 10종에서 언어 지시 수행 점수가 올랐지만, 원샷 적응이 여전히 제로샷을 앞서므로 격차는 남아 있다. 드림랩스 스스로도 Dream-1이 현재로서는 평행 그리퍼 양팔 로봇을 위한 조작 정책일 뿐이며, 이동형 매니퓰레이터나 정교한 손 등으로의 확장은 앞으로의 과제라고 선을 긋는다. 한국의 로봇·제조 현장 관점에서 보면, 전용 데이터 없이도 조작 작업을 시도할 수 있는 저비용 API라는 점은 검토할 가치가 있으나, 실제 도입에서는 보유 로봇의 IK 솔버 품질과 작업별 편차, 그리고 제로샷과 미세조정 사이의 성능 차이를 직접 측정해 보는 것이 전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