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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어떻게 '단백질 수프'를 세계 최강 섬유로 바꾸나

거미는 어떻게 '단백질 수프'를 세계 최강 섬유로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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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떨어진 거미는 오래 추락하지 않는다. 수 밀리초 만에 단백질 혼합액을 가느다란 실로 뽑아내 그것을 타고 다시 기어오른다. 이 한 가닥의 실은 자전거 타이어와 방탄복에 쓰이는 합성섬유 케블라보다 질기고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인체와도 잘 어울린다. 과학자들이 안전벨트, 헬멧, 해양 소재, 나아가 손상된 뇌세포를 잇는 지지체까지 거미줄로 만드는 꿈을 꾸는 이유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거미 실크를 재현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단백질과 물, 염이 섞인 액체 상태의 '실크 도프(silk dope)'가 어떻게 견고한 고체 섬유로 바뀌는지, 그 분자 수준의 과정을 아직 충분히 모르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주립대의 화학자이자 분광학자인 그레고리 홀랜드 연구팀은 최근 이 전환 과정의 한 단계를 원자 수준에서 들여다본 결과를 내놓았다. 액체 도프 속 분자들이 고체 섬유가 되기 전에 '콘덴세이트(condensate)'라 불리는 반액체 방울로 먼저 재배열된다는 것이다. 홀랜드는 이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일을 해당 분야의 '성배'라고 표현했다.

흐트러진 단백질에서 질서로

1907년 과학자들은 거미줄이 길고 모듈형인 단백질로 이뤄져 있음을 밝혔고, 이 단백질은 뒷날 스피드로인(spidroin)으로 명명됐다. 콜라겐, 케라틴과 같은 섬유 단백질 계열이다. 이후 X선 연구로 거미줄이 '베타 시트'라 불리는 평평한 단백질 판이 덜 정돈된 비결정 기질 속에 박힌 구조임이 드러났다. 그런데 2000년대 초 용액 상태의 스피드로인을 살펴본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단백질과 달리 고정된 구조를 보지 못했다. 대신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본질적 무질서 영역'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혼돈의 단백질 수프가 어떻게 강한 고체 섬유로 조직화되는지가 숙제로 남았다.

단서는 세포생물학에서 왔다. 2009년 과학자들은 수정된 선충 알에서 RNA 분자가 뭉친 방울, 즉 콘덴세이트를 발견했다. 농축된 단백질이 액체나 겔처럼 떠 있는 이 방울은 분자들을 고체처럼 가두지 않으면서 유연한 미세 환경 속에 모아 미리 정렬하는 역할을 한다. 이후 콘덴세이트는 DNA 조직화, 유전자 발현 조절은 물론 오징어 부리나 홍합 접착제, 모래무지벌레의 보호관 같은 강인한 생체 소재 형성에서도 발견됐다. 2020년 교토대의 누마타 게이지는 거미줄 역시 액체 도프에서 고체 실로 넘어가는 동안 콘덴세이트 단계를 거친다고 제안하며, 거미 실샘 중간부(암풀라)의 인산염이 이 과정을 촉발할 수 있다고 봤다.

검은과부거미로 확인한 분자 메커니즘

홀랜드 연구실의 대학원생 한나 존슨은 이 가설을 원자 수준에서 검증하기로 했다. 2023~2024년 샌디에이고주립대에는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으로 악명 높은 검은과부거미가 주기적으로 배송됐다. 이 거미의 견인사(dragline) 스피드로인은 거미 중에서도 구조가 가장 잘 밝혀져 있고 계절과 무관하게 구할 수 있어 연구 대상으로 적합했다. 연구진은 이산화탄소로 거미를 마취한 뒤 핀셋으로 방적돌기에서 실을 조심스럽게 뽑아 회전 모터로 바이알에 감아 채취했다. 또 실험실에서 검출 가능한 동위원소를 넣은 아미노산 혼합물을 거미에게 먹여 표지했다.

존슨은 액체 도프와 암풀라에서 모은 콘덴세이트를 핵자기공명(NMR) 분광법으로 분석했고, 박사후연구원 케빈 챌렉은 고체 섬유 속 단백질의 원자 구조를 매핑했다. 액체 도프에 인산염을 넣자 무질서 영역에 있던 아미노산 두 종류, 아르기닌과 티로신의 곁사슬이 서로 약하게 상호작용하기 시작했다. 이 작용이 물을 밀어내며 흐트러진 단백질을 더 조밀한 겔 상태, 곧 콘덴세이트로 조직화했다. 같은 상호작용이 고체 섬유에서도 유지된 점에서, 연구진은 이 아미노산이 무질서 단백질을 콘덴세이트와 최종 섬유로 이끄는 '분자 접착점' 역할을 한다고 봤다.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도구 알파폴드와 분자동역학 시뮬레이션은 이 아미노산들이 베타 시트가 꺾이는 지점에 정렬된다는 결과를 내놓아, 최종 구조를 안내한다는 해석을 뒷받침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스위치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싱가포르국립대의 다이웬 양은 이번 결과를 천연 실크에서 콘덴세이트가 형성된다는 '직접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발견이 미셀이나 액정 같은 기존 이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홀랜드는 미셀, 콘덴세이트, 액정이 하나의 상전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단계일 수 있으며, 실제 과정은 순차적이라기보다 여러 구조가 동시에 뒤섞여 일어나는 더 역동적이고 이질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무적으로 보면 이번 연구는 천연 생체 섬유를 모방하려는 소재 공학에 구체적인 설계 지침을 준다. 핵심은 '어떤 단백질을 쓰느냐'를 넘어 '어떤 조건에서 상전이를 유도하느냐'에 있다는 점이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아직 지도화하지 못한 다른 아미노산 상호작용이 있을 것이고, 인산염 외에 어떤 요인이 전환을 촉발하는지도 미지수다. 생산성의 벽도 남아 있다. 4,000년 넘게 길러온 누에와 달리 거미는 쓸 만한 실크를 소량만 생산하며, 서로 잡아먹는 습성 탓에 개체마다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 대량 사육이 어렵다. 셔츠 한 벌에 누에는 수천 마리면 되지만 거미는 약 100만 마리가 필요하다는 추정이 그 간극을 보여준다. 결국 거미를 키우는 대신, 이번처럼 전환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해독해 실험실과 바이오 제조 공정에서 재현하는 길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남는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quantamagazine.org/how-spiders-spin-silk-dop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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