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가장 흔하게 도둑맞는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지나가던 동료가 "잠깐 괜찮아?"라고 묻는 순간, 집중하던 작업은 끊기고 복귀에는 또 수 분이 걸린다. 'Fleeting'(iminafleeting.com)은 바로 이 틈을 겨냥한 서비스다. 사이트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그 정체성은 "남에게 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직장 내 자기방어"다. 사용 방식은 단순하다. 회의 하나를 고르고 재생 버튼을 누른 뒤, 그 배경 소음이 대신 말하게 두는 것이다.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Fleeting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회의의 길고 그럴듯한 녹음을 재생한다. 스피커로 틀어 두면 주변 사람은 사용자가 바쁘다고 짐작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각 회의는 약 12분 길이이며, 매번 임의의 지점에서 시작하도록 설계돼 같은 도입부를 연달아 듣는 일이 없다. 회의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때는 'Leave'나 'I have to drop' 버튼을 누르면 되고, 그러면 다른 참가자들이 작별 인사를 건넨 뒤 통화가 종료된다. 디테일에 공들인 연출이 인상적이다.
연속성을 위한 장치도 있다. 'Back-to-back meetings' 옵션을 켜 두면 한 회의를 끝까지 들은 뒤 모두가 인사를 하고, 몇 초 지나 시간대에 어울리는 다음 회의에 자동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옵션을 끄면 같은 회의가 반복 재생된다. 또한 캘린더에 미리 가짜 회의 일정을 넣어 두는 기능도 안내한다. 이 초대의 링크는 Fleeting으로 연결되므로, 알림이 떴을 때 그대로 '참석'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누가 묻기도 전에 바빠 보이도록 만드는 선제적 방어인 셈이다.
모든 것이 합성이라는 전제
서비스가 분명히 밝히는 점은 등장하는 어떤 것도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목소리는 합성음이며, 화면 속 얼굴은 AI로 생성했거나 라이선스를 받은 스톡 영상이다. 이름도 모두 지어낸 것인데, 유일한 예외는 사이트를 만든 John Carroll로, 그는 카메라를 끈 채 가끔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실제 회의를 녹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즉 Fleeting은 타인의 대화를 몰래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 낸 무대 소품에 가깝다.
사용 환경도 몰입을 돕도록 다듬어져 있다. PC에서는 회의에 들어가면 화면이 전체 모드로 전환되며 F 키로 토글할 수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브라우저의 '홈 화면에 추가' 기능을 쓴 뒤 그 아이콘으로 열면, 앱처럼 전체 화면으로 실행된다. 별도 설치 없이 웹 기술만으로 네이티브 앱 같은 경험을 흉내 내는 방식이다.
실무자에게 주는 의미와 한계
이 서비스를 진지한 생산성 도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본질적으로 Fleeting은 현대 직장 문화에 대한 풍자이자 농담에 가깝다. 다만 그 농담이 겨냥하는 문제는 진짜다. 개방형 사무실, 상시 연결된 메신저, 캘린더에 빼곡한 회의는 '깊은 집중'을 점점 사치로 만든다. 많은 조직에서 '바빠 보이는 상태'가 실제 성과보다 더 안전한 신호로 작동한다는 불편한 현실도 이 서비스의 전제에 깔려 있다. Fleeting은 그 부조리를 과장해서 보여 준다.
실무 관점에서 보면 두 갈래의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개인 차원으로, 집중 시간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들이 이런 '소품'까지 동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고 신호라는 점이다. 투명하게 '집중 시간'을 캘린더에 블록으로 잡거나 상태 표시로 알리는 정공법이 결국 더 건강하다. 다른 하나는 조직 차원이다. 구성원이 가짜 회의 뒤에 숨고 싶어진다면, 회의 문화와 끼어들기 관행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기술적으로도 이 서비스는 합성 음성과 AI 생성 영상이 얼마나 자연스러워졌는지를 가볍게 증명하는 사례다. 12분 분량의 '그럴듯한' 대화를 지어내고,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까지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성 기술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질 때 신뢰가 어떻게 작동할지에 대한 질문도 남긴다. Fleeting은 그 자체로 해법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왜 이런 방어막을 필요로 하게 됐는지 되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한 번쯤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