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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글쓰기를 불신한 이유, 그리고 기술 거부감의 정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그것이 인간을 게으르고 얕게 만든다고 경고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편리함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만화가 데이비드 말키가 수집한 자료들은 이 정서가 특정 시대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기질에 가깝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1889년에는 전기와 전화가 위협으로 지목됐고, 15세기에는 인쇄술이 비난받았다. 그리고 그 계보의 가장 오래된 사례로 독자들이 지목한 것이 기원전 370년경 플라톤이 남긴 대화편 『파이드로스』였다.

문자는 기억이 아니라 상기의 도구다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이집트 신 테우트의 전설을 전한다. 테우트는 숫자와 기하학, 천문학과 함께 문자를 발명해 파라오 타무스에게 바친다. 그는 문자가 이집트인을 더 지혜롭게 하고 기억을 개선하는 "기억과 지혜의 묘약"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타무스는 정반대로 답한다. 문자를 익힌 사람은 기억을 훈련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망각에 빠지며, 자기 안의 기억 대신 바깥의 기호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자는 기억의 묘약이 아니라 상기(reminding)의 수단일 뿐이고,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겉모습이라는 지적이다. 많이 읽어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부분 무지하다는 이 비판은, 검색 한 번으로 무엇이든 안다고 착각하는 오늘의 정보 환경과 겹쳐 읽힌다.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논점은 더 날카롭다. 그는 글이 그림과 같다고 말한다. 그림 속 존재는 살아 있는 듯 보이지만 물으면 엄숙한 침묵만 지킨다. 글도 마찬가지여서, 질문을 던져도 언제나 똑같은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게다가 한번 쓰인 글은 이해하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사이를 가리지 않고 떠돌며,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 앞에서 침묵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부당하게 공격받아도 저자가 나서지 않으면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그가 진짜 지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꼽은 것은 배우는 자의 마음에 새겨져 스스로를 방어할 줄 아는 살아 있는 말, 곧 문답과 논쟁을 통해 함께 캐물어 가는 과정이었다.

옛것의 우월함과 새것의 무가치함은 다른 문제다

플라톤은 『일곱 번째 편지』에서 이 생각을 밀고 나간다. 이름과 정의, 감각 자료가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문답 속에서 마찰을 일으키다 어느 순간 섬광처럼 이해가 빛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치 있는 것을 다루는 사람은 그것을 글로 옮겨 오해와 적의에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가 겨냥한 대상은 철학 논고를 쓴 시라쿠사의 폭군 디오니시오스 2세였다. 진리는 글로 가르쳐지지 않고 오직 겪고 논해야만 체득된다는 이 주장은, 인쇄술이 필사의 노고를 자동화해 무언가를 잃는다고 본 트리테미우스의 논리와 닮았다.

말키가 정확히 짚는 지점이 여기 있다. 이들의 통찰 자체는 존중할 만하지만, 오래된 방식이 우월하므로 새 형식은 가치가 없다는 식의 양자택일이 오류라는 것이다. 옛것이 훌륭했다는 사실이 새것의 가치를 재는 잣대가 될 수는 없으며, 이는 별개의 두 논증이다. 무엇보다 아이러니가 남는다. 소크라테스는 끝내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그 말이 오늘까지 전해지는 것은 오직 플라톤이 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쇄술을 비판한 트리테미우스조차 자신의 논고를 널리 알리려면 인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논쟁이 뒤집혀 돌아올 때

흥미롭게도 1880년대에는 이 말과 글의 대립이 정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 전화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신과 달리 전화는 문서를 남기지 않아 오해와 오류가 늘어나고, 특히 법정으로 갈 수 있는 상거래나 열차 진로 지시처럼 사고의 원인 추적이 중요한 영역에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1894년 『레일웨이 에이지』에 실린 셀든의 반론은 전신 기기 역시 자동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며 사람의 실수가 개입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요한 전화라면 보내는 쪽이 미리 적고 받는 쪽이 받아 적으면 양쪽 모두 기록을 보존할 수 있다는 해법이다.

1902년 『아메리칸 텔레폰 저널』의 논조는 한발 더 나간다. 막대한 업무가 이미 전화로 오차 없이 처리되는데도 기록에 대한 미신적 집착이 남아 있다면, 해법은 전신을 전화만큼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전화 회사가 이미 갖춘 회선과 인력으로 20단어에 10센트 수준의 값싼 지역 전보 서비스를 조직하면 수요는 충분하다는 제안이다. 여기서 실무적 교훈이 선명해진다. 신뢰성과 편의성은 흔히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배제할 이유가 아니라 함께 설계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국면도 다르지 않다. 생성형 AI가 코드를 대신 쓰고 사고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는 소크라테스의 망각론과, 자동화가 무언가를 잃게 한다는 트리테미우스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한다. 이 경계심에는 새길 만한 진실이 담겨 있다. 도구에 기댄 앎은 참된 이해의 겉모습일 수 있고, 스스로 캐묻지 않은 지식은 질문 앞에서 침묵한다. 그러나 그 통찰이 새 도구를 무가치하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무자가 할 일은 옛것과 새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여전히 스스로 익혀야 하고 무엇을 도구에 맡겨도 좋은지, 그리고 기록과 검증 같은 안전장치를 새 형식 위에 어떻게 다시 얹을지를 구별해 설계하는 일이다. 기술을 향한 거부감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것을 양자택일이 아닌 설계의 질문으로 바꾸는 순간 대화는 훨씬 생산적이 된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ondermark.com/socrates-vs-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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