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정치 문자 스팸을 소재로, 한 블로거가 '수신 거부(STOP)'라는 손쉬운 해법을 왜 끝내 거부하는지를 기록한 글이 있다. 글쓴이는 몇 년 전 텍사스를 떠났지만 여전히 주 중간선거 후보들의 문자를 지난 한 달간 하루에도 여러 통씩 받고 있다고 토로한다. 발신자는 공화당 쪽이 가장 많지만 민주당, 무소속, PAC(정치행동위원회), 중립을 표방한 여론조사와 노골적으로 편향된 여론조사, 심지어 상대 진영을 사칭하는 '위장(false flag)' 문자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어디에도 수신 동의를 한 기억이 없는데도 자신의 번호가 어떤 명단엔가 올라갔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문자가 그에게 가장 신호 대 잡음비가 높은 소통 채널이라는 점이다. 메시지함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 그리고 가끔 오는 2단계 인증(2FA) 코드로 채워진다. 빨간 알림 배지가 다른 앱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바로 그 신뢰도 때문에 정치인과 마케터, 사기꾼이 그토록 문자함에 비집고 들어오려 한다. 게다가 이 현상은 선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손으로 쓴 듯 개인적인 말투의 메시지도 'STOP'이라고 답해 보면 실은 대규모 캠페인의 일부였음이 드러난다고 그는 지적한다.
왜 그는 'STOP'을 누르지 않는가
상식적인 해법은 수신 거부 문자를 보내 발송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실험 삼아 한 번 해 본 경우를 빼면, 모든 스팸에 대해 'STOP' 대신 '삭제 및 스팸 신고(Delete and Report Spam)'를 택해 왔다. 그가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기술적이기보다 원칙적이다. STOP을 보내는 순간 '당신은 내게 무엇이든 보낼 권리가 있고, 멈추게 하려면 내가 매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구도를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발송 측이 기본값으로 그런 권리를 갖는 것, 그리고 수신자가 캠페인마다 일일이 옵트아웃해야 하는 부담 구조 자체를 그는 거부한다.
이 지점은 한국 실무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옵트인(사전 동의)과 옵트아웃(사후 거부) 중 어느 쪽을 기본값으로 둘 것인가는 광고성 메시지 규제의 오래된 쟁점이다. 거부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설계는, 거부 행위 자체가 '유효한 번호임'을 발신자에게 확인시켜 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글쓴이가 STOP을 꺼리는 정서에는 이런 구조적 불신이 깔려 있다.
신고 기능은 왜 작동하지 않나
글쓴이가 더 답답해하는 대목은 플랫폼의 대응이다. 애플은 메시지 앱에 스팸 폴더를 추가했고 실제로 거기에 걸러진 항목이 몇 개 들어 있긴 하다. 그러나 몇 달 넘게 스팸으로 신고해 왔는데도 새로 오는 비슷한 메시지는 스팸 폴더로 분류되지 않는다. 신고 데이터가 이후의 필터링에 거의 반영되지 않는 셈이다. 한편 'STOP'을 자동으로 대신 보내 주는 '삭제 및 중지(Delete and Stop)' 옵션도 뒤늦게 발견했지만, 이 기능과 '삭제 및 스팸 신고'는 서로 배타적이어서 둘을 동시에 쓸 수 없었다. 스팸 신고가 STOP 전송까지 겸해 줄 법도 한데 그렇지 않고, 매번 신고해도 특정 발신자의 문자는 계속 날아왔다.
그가 제안하는 해법은 온디바이스 LLM을 활용한 필터링이다. 사용자가 스팸으로 신고하면 '이런 메시지를 스팸으로 걸러낼까요?'라는 선택지를 띄우고, 신고된 문자를 스팸 예시 목록에 추가한다. 이후 모르는 번호에서 문자가 오면 LLM이 그 예시 목록과 대조해 유사하면 스팸 폴더로 보내는 방식이다. 자신이 과거 시도했던 AI 광고 차단 실험과 같은 결의 발상으로, 규칙 기반 필터가 잡지 못하는 변형된 문구를 의미 단위로 걸러낼 수 있다는 기대다.
남는 한계
다만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아이디어 수준의 제안이며, 실제 효과가 검증된 것은 아니다. 글쓴이 스스로도 이메일 스팸을 '해결했다'고 말하려다 멈춘다. 구매할 때마다 꼬박꼬박 수신 거부를 해도 마케팅 메일은 여전히 쏟아지고, 수신 거부 등록부(Do Not Call)에 올라 있는데도 스팸 전화는 하루에 여러 통씩 온다. 결국 채널을 가리지 않고 돈이나 표를 원하는 쪽이 사용자의 주의를 비집고 들어오는 구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체념이 깔려 있다. 온디바이스 AI 필터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거부의 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설계가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채널도 안전하지 않다는 현실이 이 글에 나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