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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스페인'과 디지털 노마드: 안달루시아 산골 마을의 실험

'텅 빈 스페인'과 디지털 노마드: 안달루시아 산골 마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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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하면 흔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인파를 떠올리지만, 관광의 그늘에는 정반대의 위기가 자리한다. 소수의 대도시가 스페인 관광 수입의 90%와 연간 1억 명에 가까운 방문객을 흡수하는 사이, 젊은 세대는 교육과 대기업 일자리를 좇아 지방을 떠나고 있다. 정부 전망에 따르면 전국 8,000개 마을 가운데 42%가 완전한 인구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스페인에서는 이 현상을 '에스파냐 바시아다(España Vaciada·텅 빈 스페인)'라고 부른다. 대도시는 과잉관광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는데, 같은 나라의 시골은 사람이 없어 사라질 걱정을 하는 비대칭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간극을 원격근무로 메워보려는 시도가 '루럴(Rooral)'이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안달루시아 산자락, 상주 인구 350명의 작은 마을 베나라바를 무대로 삼는다. 코워킹과 코리빙을 결합한 허브로서, 최대 두 달까지 원격근무자를 마을에 머물게 하며 방문자와 주민을 연결한다. 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직접 원격근무를 해 본 창업자 후안 바르베드는 디지털 노마드가 시골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목격했고, '지역 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공동체를 핵심에 두는 모델을 설계했다.

마을 경제로 흘러드는 돈과 사람

루럴 세션은 봄과 가을에 2주에서 2개월간 진행되며, 마을 내 세 채의 코리빙 주택에 참가자를 나눠 수용한다. 방 하나부터 집 한 채까지 임대를 문의할 수 있고, 회의실과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를 갖춘 코워킹 공간을 공동으로 쓴다. 동시에 머무는 인원은 대개 6~12명, 다수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다. 참가자 한 명이 한 달간 지역 경제에 남기는 돈은 평균 약 1,765달러로 집계된다. 여름 성수기에만 채워지던 흰 벽의 빈집들이 비수기에도 사람과 소비로 채워진다는 점이 핵심이다. 실베스트레 바로소 하리요 시장은 원격근무자들이 주택 임대와 술집, 지역 상점을 통해 비수기에 절실한 수입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숫자보다 인상적인 것은 관계다. 참가자들은 스페인어 수업과 포틀럭 만찬 같은 공동체 행사에 참여하도록 권장되고, 직접 워크숍을 열어 자신의 고향 문화를 나누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베나라바에 살아온 주민 아나벨 수르도는 '마을에 새 얼굴이 보이는 게 좋다'며 '누구나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참가자들이 알려줬다'고 전한다. 어떤 참가자는 마을 주민 45명의 초상을 담은 연작을 남겼고, 또 다른 참가자는 약국과 식료품점 등 마을 상점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다음 방문자를 위한 자료로 남겼다.

한국 원격근무자에게 주는 시사점

이 이야기는 '워케이션'을 고민하는 한국 IT 실무자에게도 참고할 지점이 많다. 흔한 리조트형 워케이션이 인프라 소비에 그치는 것과 달리, 루럴은 지역 공동체와의 상호작용 자체를 프로그램 설계의 중심에 둔다. 코워킹 환경과 안정적인 체류를 전제로 하되, 성과 지표를 방문객 수가 아니라 지역에 남는 경제·사회적 효과로 잡는 접근이다.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한국의 지방 소멸 대응이나 기업의 지역 연계 원격근무 실험을 구상할 때, '얼마나 많이 오게 하느냐'보다 '머무는 이가 어떤 관계와 소비를 남기느냐'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모델의 한계도 분명하다. 현재 루럴은 베나라바 한 곳에서만 운영되며, 동시 수용 인원도 십여 명 규모에 불과하다. 갈리시아의 안세우처럼 유사한 시골 코리빙 프로그램이 스페인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지만, 소멸 위기의 마을이 수천 개에 이르는 현실에 비하면 대응 규모는 여전히 작다. 바르베드 스스로도 '우리 같은 프로그램 하나가 모든 마을을 구할 수는 없으며, 이런 시도는 신뢰가 쌓이는 속도로만 나아갈 수 있다'고 인정한다. 루럴은 잉여 자금을 지역 사업에 재투자하고 다른 마을이 모델을 복제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중이다.

결국 원격근무가 지방 소멸의 만능 해법일 수는 없다. 다만 성수기와 대도시에만 쏠린 이동의 흐름을 비수기와 소외된 지역으로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문자와 주민 모두가 얻는 것이 생긴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가 이 프로그램을 2025년 '여행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선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기술이 만든 원격근무라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마을 공동체를 되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cntraveler.com/story/this-rural-village-in-s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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