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으로 돌아가기
TECH HACKER NEWS 오늘 8분 읽기 25 READS

컴퓨터의 진짜 출발점은 배비지가 아니라 '작동 메모리'였다

컴퓨터의 진짜 출발점은 배비지가 아니라 '작동 메모리'였다
SOURCE IMAGE · HACKER NEWS

컴퓨터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찰스 배비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기계식 계산기는 이미 17세기부터 만들 줄 알았고, 프로그래밍 가능한 기계라는 개념도 배비지보다 훨씬 앞서 존재했다. 진짜 병목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술이었다. 톱니바퀴와 캠만으로는 어느 정도 규모를 넘어서는 순간 데이터를 기계 내부에서 이리저리 옮기는 일 자체가 감당할 수 없이 번거로워졌다. 이 한계를 뚫은 결정적 발명은 계산 구조가 아니라 전자적으로 제어되는 데이터 레지스터, 즉 연산 결과를 그 자리에 '고정'해두고 필요한 곳으로 손쉽게 흘려보내는 회로였다.

실무자 관점에서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RAM의 계보가 사실상 잊혀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작동 메모리를 대용량 저장장치나 입출력의 발전과 뒤섞어 이해한다. 그러나 원문 필자가 강조하듯, 20세기 마지막 몇 해 전까지 개인용 컴퓨팅의 가장 큰 발목을 잡은 제약은 저장 용량도 CPU 속도도 아닌 RAM이었다. 메모리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따라가 보면, 반도체 이전 시대의 엔지니어들이 '비트 하나를 붙잡아 두는 일'에 얼마나 기이하고 창의적인 물리 현상을 동원했는지가 드러난다.

계전기에서 진공관까지: 비트를 '걸어두는' 회로

최초의 실용적 전자 메모리는 계전기(relay), 즉 전자석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스위치였다. 접점이 닫히면 스스로 전류를 공급해 상태를 유지하는 래칭 구조를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오늘날의 SR 래치와 원리가 같다. 사실상 최초의 진정한 전자식 컴퓨터로 꼽히는 콘라트 추제의 Z3가 이 계전기 메모리를 사용했다. 다만 추제 자신도 수십 헤르츠에 불과한 계전기 스위칭 속도가 막다른 길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나치 정권의 장기 지원을 기대하며 편의적 선택을 했지만 지원은 끝내 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유럽에는 다행이었다.

연합국 진영은 암호 해독의 성과 덕분에 더 비싸고 복잡한 진공관 설계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진공관 메모리 셀의 원형은 에클스와 조던이라는 잊혀진 영국 발명가 두 사람의 쌍안정 회로였다. 입력 전류가 두 진공관 사이의 균형을 자기강화적 되먹임으로 깨뜨리며 상태를 고정하는 이 구조 역시 현대 마이크로프로세서 다이에 들어가는 고속·저전력 SRAM 셀과 근본 동작이 같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작 대부분의 진공관 컴퓨터가 주 메모리로는 진공관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Z3만 해도 연산부에 계전기 600개가 필요한 데 비해 메모리에는 약 2,000개가 들어갔고, 진공관은 개당 히터 필라멘트에 상시 전력까지 요구해 비용 계산이 훨씬 나빴다. 1970년대 중반 대규모 집적회로(LSI)가 등장하기 전까지 주 메모리는 늘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야 했다.

소리와 전하로 데이터를 붙잡던 시대

그 다른 방식이 바로 동적(dynamic) 메모리였다. 정전기나 음파처럼 수명이 짧은 물리 현상에 정보를 실어두고, 사라지기 전에 주기적으로 읽어 되살리는 방식이다. 아타나소프-베리 계산기(ABC)는 회전 드럼에 배열된 축전기의 전하 상태로 값을 표현했는데, 자연 방전 때문에 정기적 리프레시가 필요했다. 이것이 오늘날 DRAM의 직접적 선조다. 지금의 DRAM도 여전히 축전기를 쓰며, SRAM보다 느리고 전력을 더 먹지만 비트당 소자 수와 다이 면적이 훨씬 적다는 장점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 근본적 트레이드오프, 즉 속도의 SRAM과 밀도의 DRAM이라는 구도는 반세기 넘게 메모리 계층 설계의 뼈대로 이어지고 있다.

음파를 이용한 지연선(delay line) 메모리는 또 다른 계보였다. 재료 한쪽 끝에 소리를 밀어넣고 반대편에서 감지하는 사이, 전파에 걸리는 시간만큼의 비트가 '이동 중'에 저장됐다. 이 장르의 가장 기괴한 사례가 수은 지연선이다. 위키피디아는 수은이 압전 변환기와 음향 임피던스가 유일하게 맞아서 선택됐다고 설명하지만, 필자는 특허 원문(US2629827A)을 근거로 이를 오독으로 본다. 고체 금속은 종파 음속이 너무 빨라 같은 클럭·길이에서 저장 비트 수가 적었고, 더 무르고 압축성이 큰 액체는 고주파를 감쇠시켰다. 결국 수은은 안전과 무게를 무시한다면 그 시대에 최적의 저장 용량을 제공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미친 과학자' 시기는 금속선을 코일 형태로 감아 비틀림(torsion) 파동을 쓰는 발상이 나오면서 정리됐다. 한편 윌리엄스관과 RCA 셀렉트론관은 CRT처럼 인광면에 전자를 쏘아 수백 비트를 밝은 점의 패턴으로 저장하되, 실제 읽기는 정전기장의 변화를 감지해 수행했다.

자성 메모리와 그 유산

대략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약 20년간은 자성 주 메모리도 흔했다. 초기 자기 드럼 메모리는 강자성 원통을 빠르게 돌리고 그 위에 비접촉 헤드를 다수 배치했지만, 이미 수 메가헤르츠로 돌던 당대 컴퓨터에는 여전히 느렸다. 집적회로 이전 시대의 정점은 자기 코어 메모리였다. 미세한 페라이트 구슬에 절연 구리선을 격자로 통과시키고, 가로선과 세로선에 각각 문턱값 이하의 전류를 흘려 교차점에서만 자화 문턱을 넘겨 특정 코어를 뒤집는 방식이다. 읽기는 셀을 덮어쓴 뒤 극성이 뒤집힐 때 유도되는 전류 펄스를 감지하는, 다소 번거로운 파괴적 읽기였다. 8×8인치 모듈에 32킬로바이트가 담겼을 만큼 빠르고 작았다.

이 자성 RAM의 계보는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 에버스핀 테크놀로지스는 최대 16메가바이트급 자기저항(MRAM) 칩을 임베디드용으로 판매하는데, SRAM처럼 동작하면서 전원이 없어도 데이터를 유지한다. 지금으로선 가격·용량 경쟁력이 뚜렷하지 않지만, 방사선과 EMP에 강해 항공우주·국방 분야에서 쓰임새가 있다. 메모리 기술이 걸어온 길이 이토록 구불구불했다는 사실 자체가, 앞으로 어떤 물리 현상이 다시 주류로 소환될지 함부로 단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컴퓨터를 컴퓨터답게 만든 것은 화려한 연산 구조가 아니라, 비트 하나를 붙잡아 두는 지루하고도 끈질긴 싸움이었던 셈이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blog.coredump.cx/p/memory-the-forgotten-history
SHARE
NEXT · CHOOSE

변화를 읽었다면,
내가 만들 수익 구조를 고릅니다.

정보를 더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광고·외주·판매·중개·구독 중 내 상황에 맞는 출발점을 정해보세요.

21가지 수익 구조 살펴보기
처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