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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전쟁이 낳은 세계 최초의 채권 시장, 베네치아 프레스티티

실패한 전쟁이 낳은 세계 최초의 채권 시장, 베네치아 프레스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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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년 3월 12일 아침, 비잔틴 제국 영토 곳곳에서 베네치아 사람들이 일제히 체포됐다. 상점과 물품, 선박이 압류됐고 주민들은 투옥됐다. 콘스탄티노플에서만 1만 명 이상, 전체로는 2만 명이 넘어 수용 공간이 부족해 수도원까지 동원됐다고 전해진다. 명목상 주군이던 비잔틴 제국과 북이탈리아의 상업 도시 베네치아 사이에 한 세기 넘게 쌓인 긴장이 한순간에 폭발한 사건이었다. 이 충격이 결국 오늘날 국가 재정의 근간인 채권 시장이 탄생하는 출발점이 됐다.

상업 도시가 전쟁 자금을 마련하는 법

12세기 베네치아는 지중해 교역의 심장이었다. 8만 명에 이르는 시민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상업에 종사했고, 콜레간차(colleganza)라 불린 투자자와 상인 간 동업 계약 덕분에 가난한 시민도 자금을 모아 원거리 교역에 참여하고 위험과 이익을 나눌 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코멘다로 불린 이 구조는 훗날 북유럽 주식회사의 초기 형태로 평가된다. 해방된 크로아티아 노예의 손자이자 평범한 조타수의 아들이었던 자카리아 스타냐리오가 교역으로 부를 쌓아 가문을 지배 계층에 올려놓은 기록은, 이 제도가 만들어낸 사회적 이동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도시 자체에는 돈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세금을 가볍게 매기고 큰 지출은 임시 차입으로 메웠다. 1164년 베네치아는 은 약 270kg을 열두 가문에서 빌리는 대가로 리알토 시장 수입 11년치를 넘겼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을 응징할 함대를 꾸리는 데는 이런 소규모 대출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강제 대출을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도제 비탈레 2세 미키엘의 해법은 과감했다. 도시를 여섯 구역으로 나누고 시민의 재산을 평가해 필요한 자금을 거둬들였다. 다만 일회성 전쟁세가 아니라, 연 5%의 이자를 상환이 끝날 때까지 지급하는 '대출'의 형식을 취했다. 결정적으로 이 프레스티티(prestiti) 증서는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급히 현금이 필요한 시민은 자신의 채권을 할인된 가격에라도 남에게 팔 수 있었다. 정기적이고 고정된 이자 지급의 신뢰성과 채무의 양도 가능성이 결합되자, 애초에 굴욕의 산물이던 강제 대출은 점차 상업적 자산으로 변모했다.

모은 금액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몇 달 만에 120척의 전함을 띄울 만큼은 됐다. 하지만 원정은 참담하게 끝났다. 함대는 네그로폰테 섬에 상륙해 기세를 올렸으나, 협상을 선호한 도제가 철수와 대기를 반복하는 사이 비잔틴 황제 마누엘은 시간을 벌며 전력을 모았다. 결국 정박 중이던 함대에 역병이 돌아 며칠 만에 1,000명 넘게 죽었고, 사절단마저 빈손으로 돌아왔다. 1172년 5월 귀환한 도제는 겁쟁이라는 비난 속에 성난 군중에게 살해당했다.

빚이 공공재가 되기까지

역설적으로 이 실패가 제도를 영속시켰다. 비잔틴 항구에서 쫓겨나고 재정이 무너진 베네치아는 약속대로 프레스티티를 상환할 수 없었고, 임시 비상 대출은 사실상 영구적인 국가 부채로 굳어졌다. 베네치아는 리알토 노점의 세수를 따로 떼어 5%의 이자만은 꾸준히 지급했고, 산마르코 재무관이 모든 수입과 지급을 투명하게 기록했다. 이 역할은 훗날 대평의회로 넘어갔다. 채권자이자 시민이던 부유한 가문들이 평의회를 장악하면서, 당시 유럽의 절대군주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국가가 일방적으로 빚을 탕감해버리는 일을 스스로 막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도제를 시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11인 위원회에 맡기기로 한 결정과 맞물려, 조용한 제도적 전환이 일어난 셈이다.

이제 시민은 저축을 미래의 현금 흐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은퇴 대비 소득원으로, 기부나 지참금으로 활용하거나 다른 대출의 담보로 쓸 수 있었고, 돈이 필요하거나 국가의 지급 능력이 불안하면 리알토 시장에서 은행가와 투기꾼에게 팔 수 있었다. 오늘날 채소 시장이 된 캄포 산자코모 디 리알토의 나무 탁자(banci) 주변에서 환전과 예금, 대출과 함께 프레스티티 매매가 이뤄졌고, 그곳이 세계 최초의 채권 시장이 됐다. 이 모델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로 퍼지며 도시국가 번영의 핵심 장치가 됐다.

이 이야기가 오늘의 실무자에게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하나의 금융 혁신이 작동하려면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지급'이라는 신뢰성과 '자유로운 양도'라는 유동성,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투명한 기록과 자의적 변경을 억제하는 지배구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점이다. 강제로 떠넘겨진 부채가 공공재로 바뀐 것은 설계의 우연이 아니라 이 세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다만 그 출발이 성공한 전략이 아니라 역병과 패전, 한 통치자의 죽음이라는 재난이었다는 사실 또한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도는 때로 승리가 아니라 수습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bigthink.com/books/a-fabulous-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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