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이 지상의 레이더 신호를 몰래 긁어모으는 전자정보(ELINT) 수집은 냉전기 우주 정찰의 핵심 영역이었다. 최근 미 정찰위성국(NRO)이 URSALA, RAQUEL, FARRAH, GLORIA, CARRIE 같은 이름의 소형 위성 계획을 기밀 해제하면서, 1963년 처음 큰 위성 옆구리에 얹혀 발사된 '히치하이커(hitchhiker)' 위성이 어떻게 40년 넘게 이어졌는지가 드러났다. 특히 지난 두 달 사이 과거 비밀이던 우주왕복선 탑재체 정보까지 공개됐다. 대형 여행가방 정도 크기에 안테나를 잔뜩 두르고 빠르게 자전하며 지상을 훑던 이 위성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첩보사(史)를 넘어 '수집된 데이터를 누구에게, 얼마나 빨리 전달하느냐'라는 시스템 설계 문제로 읽을 수 있다.
제약 속에서 쥐어짜낸 설계
초기 히치하이커는 제작사인 록히드의 명칭을 따 P-11로 불렸고, 1965~66년 P-770B를 거쳐 '프로그램 989'로 재명명됐다. 이 위성들은 사진정찰 위성에 함께 실려 올라갔기 때문에 크기·질량·전력·성능·비용 모두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작은 몸체에 최대한의 성능을 담으려 했고, 주변부에 여러 개의 접시 안테나를 달아 원심력으로 펼치는 방식을 썼다. 레이더는 전방으로 강한 주빔을 쏘고 측면으로 약한 사이드로브를 흘리는데, 주빔은 위성이 그 원뿔을 통과해야만 잡을 수 있는 반면 접시 안테나는 더 넓게 퍼지지만 희미한 사이드로브를 포착할 수 있었다. 작은 위성에 굳이 접시를 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창기 위성들은 저궤도 특성상 수명이 수개월에 그치기도 했다. 큰 저주파 나선 안테나나 대형 접시를 단 위성일수록 희박한 대기의 저항에 끌려 내려갔다. 보통 1~4년이면 대기권에서 소멸했지만, MABELI는 7년, TOP HAT II는 6년 동안 작동하다 재진입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공군특수계획실(SAFSP)은 전자장비 개선을 통해 위성 수명과 성능을 끌어올려 더 적은 수로 임무를 수행하려 했다. 참고로 위성 명칭은 임무를 암시하지 않도록 영화 여배우 이름을 붙이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베트남전이 바꾼 요구사항
1960년대 NRO는 소련 탄도탄요격미사일(ABM) 레이더를 겨냥한 P-11을 여러 대 올렸다. 하지만 1969년까지 베트남 상공에서 수백 대의 미군기가 격추되는 동안, 영상으로는 포착된 소련 레이더의 전자신호를 정작 잡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기존 위성은 12~18기가헤르츠 Ku 대역을 탐색할 능력이 없었고, 펄스마다 주파수를 바꾸고 펄스 간격까지 흔드는 이른바 '이중 민첩(double-agile)' 레이더의 등장도 예상됐다. 이 요구는 당시 기술로는 단일 시스템으로 충족할 수 없어 URSALA와 RAQUEL 두 계통으로 갈라졌다.
URSALA는 2~12기가헤르츠 대역에서 이중 민첩 레이더의 사이드로브를 폭넓게 훑는 '범용 탐색' 위성이었다. 반면 RAQUEL은 지평선부터 훑는 대신, 회전하는 연필빔으로 가까운 표적에 체류 시간을 집중하도록 설계돼 복잡도가 높아 개발에 더 오래 걸렸다. URSALA 위성 4기는 1970년대에 HEXAGON 사진정찰 위성에서 분리돼 약 509킬로미터 원궤도에 올랐다. 1972년과 1973년에 발사된 URSALA I·II는 무게 178킬로그램에 설계수명은 9개월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각각 70개월과 61개월을 버텼다. 수명 margin을 크게 잡아 설계한 셈이다.
데이터가 전장으로 내려오다
처음에 이 위성들의 데이터는 NSA 같은 국가 기관에서 평가된 뒤에야 전술 항공기 보호에 쓰였다. 전술 부대는 간접적으로 혜택을 볼 뿐 정보를 직접 받지는 못했다. 전환점은 1973년 중동전쟁이었다. '작전 지원' 목적의 활용이 성공을 거두면서 위성 탑재 처리와 이동형 지상 단말 양쪽에서 더 빠른 데이터 처리 기법 개발이 촉발됐다. 이는 적 전자 방사원의 종류와 위치를 알려주는 전자전투서열(EOB)로 이어졌다. 예컨대 소련 SA-6 이동식 지대공 미사일 레이더가 새 위치에서 잡히면, 이는 기갑 종대나 야전 지휘소 같은 고가치 표적이 이동 중이라는 단서가 됐다.
1970년대 중반 육군과 공군의 전술 사용자들은 NSA를 거치지 않고 저궤도 위성 데이터에 직접 접근하길 원했다. 이들이 지원한 RTIP는 1977년 안테나 밴과 처리 밴 두 대의 차량으로, URSALA III 데이터를 직접 수신해 현장에서 처리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것이 '국가 정찰자산의 전술적 활용(TENCAP)'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중앙 집중형 처리의 병목을 풀기 위해 수집 지점과 가까운 곳에서 데이터를 가공하는 '엣지 처리'의 초기 형태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그 수요가 거꾸로 위성 요구사항 자체를 끌어당겼다는 점이다. 다만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각 위성 탑재체의 세부 성능이나 소련 측 대상 레이더의 정체가 여전히 가려져 있어, 이 서사는 설계 사상의 전환이라는 큰 틀에서 읽는 편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