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정부가 소셜미디어 이용자에게 추천 알고리즘을 끌 수 있는 선택권을 강제로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가 공식 반발에 나섰다. 캔버라 주재 미국 대사관은 호주가 준비 중인 '디지털 돌봄 의무(digital duty of care)' 법안 초안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하고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검열"에 해당한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 간 규제 갈등을 넘어, 플랫폼 설계를 법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어디까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사안이다.
법안의 뼈대와 미국의 반박 논리
호주 초안의 핵심은 명확하다. 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테크 기업이 알고리즘을 끌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으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린다는 것이다. 알고리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원할 경우 개인화 추천을 해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옵트아웃' 의무가 골자다.
미국 측 반박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유해(harm)'와 '위험(risks)'이라는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정부가 이런 애매한 기준을 집행하게 되면 결국 특정 관점을 겨냥한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며, 두 개념이 어떻게 판정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보호받는 표현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둘째는 이 규제가 독립 언론인이나 민감·논쟁적 주제를 다루는 목소리의 도달 범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플랫폼이 규제 리스크를 피하려 이런 콘텐츠를 선제적으로 강등(pre-emptively demote)시킬 유인이 생긴다는 논리다.
'역외 효과'라는 실질적 쟁점
실무적으로 더 주목할 대목은 규제의 국경 너머 파급력이다. 미국은 알고리즘에 적용되는 플랫폼 설계 의무가 호주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이용자가 보고, 말하고, 듣는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서 국가별로 알고리즘 동작을 완전히 분리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간단하지 않다. 한 국가가 요구한 '경직된 일률적 설계 요건'이 사실상 전 세계 제품 아키텍처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경고다.
이 지점은 이른바 '브뤼셀 효과'로 불리는 현상, 즉 한 관할권의 규제가 글로벌 표준으로 굳어지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럽연합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이 이미 콘텐츠 추천과 투명성에 대한 의무를 부과해 온 가운데, 호주가 옵트아웃을 법제화하면 플랫폼들은 서로 다른 규제 요구를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압박에 놓인다. 미국이 호주의 '혁신을 촉진하는 관할권'으로서의 평판까지 거론한 것은, 규제 부담이 기업의 투자 판단에 미칠 파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힌다.
통제권 이전인가, 정부 개입인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 법안이 정부에 통제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통제권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이던 그는 뉴욕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기기에서 무엇을 받아볼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알고리즘이 이용자 선택과 무관하게 콘텐츠 노출을 결정하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고, 그 선택권을 개인에게 되돌린다는 프레임이다.
반면 미국의 논리는 '누가 유해를 정의하는가'에 무게를 둔다. 정부 관료의 편향과 선호가 독립적이거나 소수 관점의 표현을 불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업계 우려를 호주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옵트아웃 의무를 두고, 한쪽은 이용자 자율권의 회복으로, 다른 한쪽은 국가가 표현 유통에 개입하는 통로로 해석하는 셈이다.
한국 실무자에게 이 사안은 두 가지 함의를 준다. 하나는 알고리즘 투명성·선택권 요구가 개별 국가 규제를 넘어 제품 설계의 국제 표준 이슈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추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업자라면 특정 시장의 옵트아웃 의무가 전체 아키텍처에 미칠 영향을 미리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유해 콘텐츠'의 정의와 집행 방식이 규제의 성패를 가른다는 점이다. 정의가 모호할수록 기업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콘텐츠를 과도하게 강등할 유인이 커지고, 이는 표현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현시점에서 확정된 것은 없다. 논란의 대상은 여전히 법안 초안이며, 미국의 의견서 역시 입법 과정에 제출된 의견의 하나다. 유해와 위험의 구체적 판정 기준, 옵트아웃 의무의 기술적 이행 범위, 역외 적용의 실제 강도는 모두 최종 법안에서 정해질 문제로 남아 있다. 이번 갈등은 호주가 지난해 12월 16세 미만 아동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한 데 이어 온라인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는 흐름 위에 놓여 있으며, 그 방향성이 표현의 자유·글로벌 플랫폼 규제와 어떻게 조율될지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