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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카드 집계기: IBM의 뿌리가 된 데이터 자동화의 시작

펀치카드 집계기: IBM의 뿌리가 된 데이터 자동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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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반도체가 전하의 유무로 0과 1을 구분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 이진 원리를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처음 적용한 기계는 컴퓨터가 아니라 19세기 말에 등장한 전기식 집계기였다. 미국 인구조사국에서 제조업 통계를 정리하던 허먼 홀러리스는 설문지를 일일이 손으로 세는 방식이 지루하고 오류가 잦으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기관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자동화가 답이라고 확신했고, 전기로 작동하는 집계기를 발명해 기계화된 데이터 처리의 시대를 열었다.

버팔로 출신의 광산 엔지니어였던 홀러리스는 원래 발명가를 지향한 인물이 아니었다. 1879년 인구조사국 동료가 계산 자동화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자 설계에 착수했고, 1884년 첫 특허 출원에서는 자동 연주 피아노의 종이 두루마리처럼 종이 띠에 구멍을 뚫어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1886년 그는 펀치카드로 방식을 바꿨고 이듬해 두 번째 특허를 출원해 1889년 두 특허를 모두 취득했다. 펀치카드 자체는 그의 발명이 아니었다. 약 80년 전 프랑스의 조제프 마리 자카르가 증기 직조기를 자동화하는 데 펀치카드를 썼고, 1830년대 중반 영국 수학자 찰스 배비지는 해석기관 설계에서 펀치카드로 연산 명령을 주는 구상을 했다. 그러나 그 원리를 데이터 처리에 적용한 사람은 홀러리스가 처음이었다.

경쟁에서 증명된 속도

홀러리스는 1886년 볼티모어, 저지시티, 뉴욕시의 사망 통계를 정리하며 기계를 시험했다. 1888년 인구조사국은 1890년 인구조사 처리 계약을 걸고 가장 빠른 집계 방식을 뽑는 경쟁을 열었다. 두 경쟁자가 데이터 집계에 각각 144.5시간과 100.5시간이 걸린 반면 홀러리스는 72.5시간을 기록했다. 특히 집계 전 데이터를 준비하는 작업에서 격차가 컸는데, 경쟁자들이 44.5시간과 55.5시간이 걸린 일을 그는 5.5시간에 끝냈다. 결과적으로 그의 시스템은 인구조사국에 500만 달러와 2년 이상의 노동을 절감시켰고, 8년 넘게 걸린 1880년 조사와 달리 집계는 6개월, 전체 데이터 정리는 2년 만에 완료됐다.

집계 과정은 단일 기계가 아니라 여러 장치가 맞물린 다단계 공정이었다는 점이 실무적으로 흥미롭다. 먼저 사무원이 종이 조사표의 데이터를 천공기로 펀치카드에 옮겼는데, 구멍 하나하나가 가구에서 수집한 서로 다른 인구통계 항목에 대응했다. 이 작업 속도는 하루 약 500장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든 카드를 샌드위치 프레스를 닮은 판독기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스프링이 달린 금속 핀이 카드 위로 내려왔다. 핀이 뚫린 구멍을 통과해 수은 저장조와 접촉하면 회로가 닫히면서 40개 다이얼 중 하나에 '1'이 기록됐고, 접촉이 없으면 '0'과 같았다. 이후 추가된 분류기는 구멍 위치에 따라 최대 24개 범주로 카드를 나눴으며, 숙련된 작업자는 분당 80장을 처리할 수 있었다.

데이터가 곧 사업이 되다

1890년 인구조사의 성공은 오스트리아, 캐나다, 쿠바, 프랑스, 노르웨이, 필리핀, 러시아 등 여러 나라가 자국 인구조사를 위해 홀러리스의 집계기를 도입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기계를 철도, 백화점, 공익사업체 같은 민간 기업에도 통계와 회계 용도로 임대했다. 이후 60여 년간 집계기와 펀치카드 방식은 온갖 제품과 사람에 관한 데이터를 항목화하고 분류하고 취합하며, 훗날 IBM으로 알려지는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1896년 그는 태뷸레이팅 머신 컴퍼니를 세워 상업적 응용을 넓혔고, 1900년 인구조사 계약도 유일한 기계식 해법이라는 이유로 어렵지 않게 따냈다. 인구가 21% 늘어 총비용은 6% 증가했지만 1인당 비용은 오히려 13%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와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1902년 인구조사국이 상설 기관이 되면서 관료들은 기계 비용에 문제를 제기했고, 곧 만료될 홀러리스의 원천 특허를 바탕으로 자체 집계기와 분류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들은 그의 옛 직원들을 고용해 설계를 익혔고, 1905년 홀러리스는 기계와 가격을 개선하지 않으면 계약을 잃을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그는 이에 반발해 1910년부터 1912년까지 정부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했다. 한 발명가의 기술이 공공 기관의 내부 역량으로 흡수되는 과정은, 핵심 기술을 특정 공급자에 의존하던 조직이 결국 이를 내재화하려는 오늘날의 구도와도 겹쳐 읽힌다.

1911년 7월 6일 홀러리스는 회사를 금융가 찰스 플린트에게 약 231만 달러(2022년 기준 6,500만 달러 이상)에 매각했다. 플린트는 이 회사를 시간기록·계측 사업체 두 곳과 합쳐 컴퓨팅-태뷸레이팅-레코딩 컴퍼니(C-T-R)를 만들었고, 이 회사는 1924년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머신스, 곧 IBM으로 이름을 바꿨다. 홀러리스는 10년 계약의 자문 엔지니어로 남아 중요한 개선을 이어갔지만 역할은 점차 줄었고 계약은 갱신되지 않았다. 1889년 말단 사무 보조로 채용됐던 오토 브라이트마이어가 집계기 사업을 넘겨받아 IBM 부사장이 됐다.

홀러리스의 기계가 남긴 유산은 단순한 자동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사회 발전을 가로막던 수작업 부담을 세상을 이해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바꿨고, 반세기 넘게 통계와 계산, 과학적 성취를 뒷받침했다. 다만 이 이야기는 기술적 우수성만으로 사업의 지속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특허 만료, 최대 고객의 이탈, 창업자 역할의 축소를 거치면서도 회사가 살아남아 IBM으로 성장한 것은 개별 발명이 아니라 조직과 자본, 상업적 응용의 확장이 맞물린 결과였다. 데이터 처리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과, 그 가치를 오래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바꾼 구조는 서로 다른 문제였던 셈이다.

SOURCE · HACKER NEWS
원문 전체 보기 → https://www.ibm.com/history/punched-card-tabul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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