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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지하 동굴 무빌레: 500만 년간 봉인된 '태양 없는 생태계'

루마니아 지하 동굴 무빌레: 500만 년간 봉인된 '태양 없는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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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면에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생명은 결국 햇빛에 기댄다. 식물이 빛으로 당을 만들고, 동물이 그 식물을 먹으며, 다른 동물이 다시 그 동물을 먹는다. 여기서 태양을 빼면 우리가 아는 먹이사슬은 한 계절도 못 버티고 무너진다. 오랫동안 '생명에는 햇빛이 필요하다'는 명제는 생물학의 기본 전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루마니아 남동부 흑해 연안 지하에서 발견된 한 동굴은 이 전제에 예외가 있음을 보여줬다.

우연히 열린 봉인된 세계

1986년, 흑해 연안 항구도시 망갈리아 인근에서 작업자들이 발전소 건설 예정지의 지반을 조사하기 위해 시추공을 뚫고 있었다. 지표면은 평범한 마른 농지였고, 지하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단서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시추 과정에서 지하 약 18미터 지점의 빈 공간이 뚫렸고, 그곳은 물에 잠긴 석회암 미로로 이어지는 입구였다. 위쪽을 두꺼운 점토와 석회암층이 덮고 있어 빗물도 스며들지 않았고 지표의 공기도 순환하지 않았다. 지질 구조가 바뀌며 문이 닫힌 마이오세 후기 이래, 약 550만 년 동안 외부와 사실상 단절돼 있던 셈이다. 연구자들은 곧 이곳이 평범한 동굴이 아니라, 수백만 년간 홀로 자기만의 생물학 실험을 이어온 밀폐 환경임을 깨달았다.

체르노빌이 남긴 뜻밖의 증거

동굴이 정말로 수백만 년간 완전히 밀폐돼 있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물은 결국 암석 틈으로 새어들기 마련이라, 이 주장은 강력한 뒷받침이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동굴이 발견된 1986년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난 해였다. 사고로 방사성 동위원소가 루마니아를 포함한 유럽 곳곳의 토양과 지표수에 퍼졌고, 이는 지표수에 일종의 화학적 시간표를 찍는 역할을 했다. 연구진이 동굴 내부의 물에서 이 낙진의 방사성 흔적을 찾았지만 단 한 점도 검출되지 않았다. 현대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진 오염 사건조차 이 지하 세계에는 물 한 방울도 침투하지 못한 것이다. 지질 구조와 물·공기의 독특한 화학 조성과 더해져, 이 봉인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됐다.

사람에게 독인 공기가 생명의 연료다

무빌레 동굴은 접근 허가 문제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이 오래 머물 수 없는 환경이다. 깊은 구역의 산소 농도는 지표의 절반 수준이고, 이산화탄소는 훨씬 높으며, 썩은 달걀 냄새를 내는 황화수소와 메탄, 암모니아가 공기에 섞여 있다. 물웅덩이는 따뜻하고 탁하며 산소가 적고 용존 화학물질이 가득하다. 그런데 인간에게 숨 쉴 수 없는 이 화학물질들이야말로 이곳 생태계를 살아 있게 하는 연료다. 핵심은 화학합성이다. 생태계 맨 아래의 미생물은 빛 대신 황화물, 메탄, 암모늄 같은 화합물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고 유기물을 만든다. 이 세균들이 물 위와 동굴 벽에 형성한 창백하고 미끈한 미생물 매트가 이 지하 세계의 목초지 역할을 한다. 작은 생물이 매트를 뜯어먹고, 더 큰 생물이 그것을 먹으며, 포식자가 정점에 앉는 구조가 광자 하나 없이 완성된다.

어둠 속 진화의 실험실

무빌레가 과학적으로 특별한 이유는, 발견 당시 태양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생태계가 1970년대 후반에 확인된 심해 열수분출공 정도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빌레는 대양저가 아니라 대륙 석회암 속에 봉인된 담수·육상 버전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번째 사례였고, 생명의 에너지원에 관한 교과서 도식을 다시 그리게 만들었다. 이곳에는 약 50종의 무척추동물이 살며, 그중 33~37종가량은 오직 이 동굴에만 존재하는 고유종으로 조사돼 있다. 거미, 의갈, 쥐며느리, 지네, 거머리, 달팽이, 물전갈 등이 확인됐는데, 서로 무관한 종들에서 같은 특징이 반복된다. 대부분 눈이 퇴화해 앞을 못 보고 색소도 없어 창백하거나 반투명하다. 빛이 없는 곳에서 눈과 색은 비용만 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톱니 모양 뒷다리를 가진 한 지네에는 연구자들이 '동굴의 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무빌레의 의미는 루마니아를 넘어선다. 영구적 어둠과 가혹한 화학 환경 속에서 암석과 물의 반응만으로 유지되는 생태계는, 태양계 일부 위성의 얼음 아래나 화성 지표 밑에 존재할지 모를 생명의 합리적인 모델이 된다. 그런 곳에 생명이 있다면 햇볕을 쬐는 대신 무빌레의 미생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 동굴은 지구 밖 생물학을 사고하는 데 쓸 만한 유사 환경으로 연구 관심을 끌어왔다. 다만 수백만 년간 온전히 보존된 취약한 계인 만큼, 부주의한 방문으로 쉽게 교란될 수 있어 접근은 엄격히 제한된다. 평범한 농지 밑에서 뚫린 시추공 하나가 인류가 등장하기도 전에 닫힌 세계를 열었고, 그 안에서 생물학의 오랜 전제를 깨는 완결된 생명 공동체가 여전히 그 오래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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