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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 이미 봤을, 이름 없는 150년 된 글꼴 '고턴'

당신이 오늘 이미 봤을, 이름 없는 150년 된 글꼴 '고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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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하는 글꼴에는 대개 이름이 있다. 뉴욕 지하철의 헬베티카, 오바마 캠페인으로 유명해진 고섬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일해 온 글꼴 중 하나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디자이너 마르친 비호프스키가 타이핑의 역사를 취재하다 발견한 '고턴(Gorton)'이 그런 경우다. 그는 이 글꼴 하나만을 좇아 뉴욕에서 100마일 넘게 걸으며 수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고턴은 전형적인 '잘 만든' 글꼴의 규칙을 거의 다 어긴다. G는 옆으로 굴러갈 듯 불안정하고, Q에는 우스꽝스러운 물결 갈고리가 붙어 있으며, C의 끝은 옆 글자를 붙잡으려다 만 것처럼 어정쩡하다. 숫자도 마찬가지여서 윗변이 평평한 3은 키릴 문자를 닮았고, 6과 9는 어딘가 순진한 대칭을 이루며, O와 0은 다른 곳이라면 해고감일 정도로 뒤섞여 있다. 게다가 하나의 규격이 아니라 0이 사각형·점·빗금으로 갈리고, I에 세리프가 붙기도 하는 등 변형이 제각각이다. 저자가 처음 든 생각은 '엉망'이었고, 두 번째 생각은 '그런데 마음에 든다'였다.

인쇄가 아니라 '깎아낸' 글꼴

고턴의 정체는 인쇄가 아닌 조각에 있었다. 저자는 페리, 국립공원 표지판, 인터폰, 엘리베이터, 치과 등에서 같은 형태를 발견했는데 공통점은 모두 금속·플라스틱·나무에 글자가 파여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위스콘신의 조지 고턴 기계회사(George Gorton Machine Co.)가 만든 팬터그래프 조각기의 표준 글꼴이었다. 글자 템플릿을 손으로 따라 그리면 회전 커터가 그 움직임을 모방해 재료를 깎아냈고, 1952년 카탈로그의 첫 글꼴이 바로 'Gorton Normal'이었다.

이 출신이 고턴의 거친 인상을 설명한다. 대부분의 글꼴은 붓글씨에서 온 굵기의 미묘한 변화를 품지만, 고턴은 모든 획이 똑같은 굵기(모노라인)에 끝맺음도 전부 같은 둥근 점이다. 이탤릭은 단순히 기울인 것이고 압축형의 변형도 형식적이다. 타입 디자이너들이 낮게 평가하는 방식이지만, '빠른 추적을 위해 날카로운 모서리를 최소화한' 설계는 조각 작업에는 이상적이었다.

헬베티카보다 늙은 글꼴

더 놀라운 사실은 나이였다. 저자는 이 글꼴을 1950년대 헬베티카의 동년배쯤으로 여겼지만, 1935년, 1925년, 급기야 1902년 카탈로그에서도 같은 형태를 확인했다. 고턴은 헬베티카가 태어난 날 이미 은퇴 연령이었고, 길 산스나 푸투라, 런던 지하철 서체보다도 앞섰다. 최초의 현대적 산세리프로 꼽히는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와 거의 같은 시기의 글꼴이었던 셈이다.

왜 더 예쁜 글꼴이 많았는데도 이 투박한 서체가 쓰였을까. 우선 '기본값의 힘'이다. 조각기에 딸려 온 글꼴이 라우터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표준이 됐다는 점은, 1990년대의 애리얼이나 오늘날의 캘리브리와 다르지 않다. 또한 손으로 한 글자씩 새기던 시절, 그냥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되는 글꼴은 큰 편의였다. 무엇보다 조각은 오래갔다. 잉크는 번지고 페인트는 바래지만, 재료에 글자를 파면 수십 년, 금속이라면 수백 년을 버틴다. 글자가 재료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자체가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고턴은 산업용·군용 버튼, 지하철과 잠수함, 제트기, 핵시설, 그리고 아폴로 온보드 컴퓨터의 키 표기로 달까지 갔다.

종이 위로 번진 조각 글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고턴이 종이 위 잉크로, 금속 위 페인트로도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금속 활자 시대에 조각용 글꼴이 일반 글꼴로 바뀌기란 쉽지 않았는데, 이를 우회한 작은 산업이 생겼던 것이다. 코이펠 앤 에서(Keuffel & Esser)는 고턴의 기계로 'Leroy'라는 레터링 세트를 만들었다. 팬터그래프 방식이되 값싸고 작고 수동적이며, 커터 대신 펜을 달아 글자를 그리는 방식이었다. 우드-리건(Wood-Regan)은 'Wrico'로 이를 더 단순화해, 펜을 대고 따라 그리는 레터링 가이드만 팔았다.

숙련된 제도사들은 이런 도구를 '레터링에 서툰 이들을 위한 것'이라며 낮춰 봤지만, 결과물은 깔끔하고 빠르며 실패가 적었기에 널리 퍼졌다. 기술 문서를 넘어 파버카스텔, 로트링 등 여러 회사의 스텐실로 확산됐고, 1940~50년대 EC 코믹스와 올스타 코믹스가 Leroy를 사용해 원더우먼을 처음 소개한 만화에까지 등장했다. 실무자에게 이 이야기가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폰트의 유연성—하나의 파일이 웹, 인쇄, 절삭 가공을 넘나드는 자유—은 결코 자명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기술의 제약과 '기본값'이 무엇을 오래 살아남게 하는지에 대한 오래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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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전체 보기 → https://aresluna.org/the-hardest-working-font-in-manhat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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